한국사능력검정 기본 기출문제·모의고사·오답노트·자동채점

2024년02월17일 31번

[과목 구분 없음]
다음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 ①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의거를 일으켰다.
  • ② 평양 을밀대 지붕에서 고공 농성을 벌였다.
  • ③ 오산 학교를 설립하여 인재 양성에 힘썼다.
  • ④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로 파견되었다.
(정답률: 51%)

문제 해설

정답> ③
'역사 인물 카드'로 이승훈(1864~1930)이 나와 있다. 호는 남강이고 주요 활동으로 '신민회 결성에 참여함',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기미 독립 선언에 참여함',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을 전개함'이 차례로 제시되어 있다. 남강 이승훈이 민족정신의 고취를 통한 인재 양성을 위해 평북 정주에 오산 학교를 세운 것은 1907년 12월의 일이다.
오답 해설>
①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의거를 일으킨 인물은 한인 애국단원 매헌 윤봉길 의사(1908~1932)이다(1932.4.29).
② 평양 을밀대 지붕에서 고공 농성을 벌인 인물은 노동 운동가 강주룡(1901~1931)이다(1931.5.20). 강주룡은 임금 삭감에 저항하여 (평양의) 을밀대(평양의 고구려 시대 누정) 지붕에서 농성하였다. 지붕 위에서 강주룡은 무산자의 단결과 노동 생활의 참상을 호소하였다. 체포되어 평양 경찰서로 끌려간 뒤에도 76시간 동안 단식을 하는 등 항의하다 결국 이듬해 서른한 살의 나이로 숨지고 말았다.
④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로 파견된 인물은 보재 이상설(1870~1917), 일성 이준(1859~1907), 이위종(1887~?)이다(1907년 4월경*) 고종이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한 이유는 을사늑약 강요의 불법성을 폭로하기 위해서였다(헤이그 특사 사건)[헤이그 회의는 1907년 6월 15일(~10월 18일까지 개최)]. 이상설, 이준, 이위종 3인의 특사가 헤이그에 도착한 것은 회의가 이미 시작된 직후인 6월 25일로, 특사들은 7월까지 활동하였다(7월 14일 이준 열사가 을사늑약 강요의 불법성을 폭로하다 순국). 고종의 헤이그 특사 파견은 결국 일제에 의한 고종의 강제 퇴위와 한일 신협약 체결, (대한 제국) 군대 해산으로 이어졌다(각 1907.7.20/1907.7.24/1907.8.1).
*이때는 이준이 한성[서울]을 떠나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상설과 만난 때이다. 이상설은 사실 1년 전인 1906년 4월에 이미 대한 제국을 떠나 북간도 용정촌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리고 두 특사는 6월 중순경 시베리아 철도 편으로 당시 러시아의 페테르스부르크(지금의 상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여 주로공사 이범진(1852~1911)의 아들 이위종과 합류하였다(이범진은 을사늑약 강요 후 일제가 각국 주재 한국 공사들을 소환하자 이에 불응하고 러시아 수도 페테르스부르크에 체류하면서 국권 회복을 위해 노력, 아들을 밀사의 일원 및 통역으로 동반하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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